아름다운 추억거리/여행

밤 마실

도연명 2008. 8. 10. 14:48

입추가 지나도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몇 번을 샤워를 해도 나오면 또 등에 땀이 흐른다.

한낮엔 아무 일도 못한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도 아침 저녁나절에나 곡식을 돌본다.

한낮에 일하다간 일사병으로 일찍 갈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를 놀러갈까 생각하다가도 찜통의 차안과, 유원지 놀러가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싫어서 그냥 방콕 할 수밖에 없다.

저녁을 하기 싫어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합세해 나를 밖으로 내몰았다.

올림픽 핸드볼 경기를 시청한 후 나는 끌려 식당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고기를 시켜놓고 오랜만에 외식을 하는 것 같다.

중국에 있을 때 아들을 한국으로 보내놓고 "오빠는 잘 못 먹는데 우리만 잘 먹을 수는 없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한동안 외식을 금한 적도 있었다.

이젠 아들이 군대가서 힘들게 고생하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통하지 않았다.

음로수와 맥주를 시켰다.

아내가 맥주를 취소시켰다.

식사가 끝난 후, 시원한 밤 바람을 가르며 드라이브를 하잖다.

대천해수욕장으로.

 

나는 맥주 한잔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대신에 음료수를 마시며 냉면으로 속을 시원하게 했다.

30분을 달리면 대천해수욕장이 나온다.

밤 마실을 해수욕장으로 가기로 하고 나섰다.

아직 어둑어둑한 밤길을 달려 해수욕장 근처에 가자, 차들이 멈춰서있다.

나오는 차량도 많지만 들어가는 차량이 더 많았다.

토요일을 해수욕장에서 보내려는 가족들과 연인, 학생들이 몰린 탓이다.

 

시원하게 쭉쭉 빠진 반라의 아가씨들이 눈을 끈다.

두 딸과 아내를 데리고 가 마음놓고 눈요기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이세상 아부지들은 다 나처럼 마음놓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인가?

폭죽을 터뜨려 화약냄새가 코를 찌른다.

광장의 조명이 바다까지 비쳐 바다는 형형색색 아름다운 보물상자같은 느낌이다.

슬리퍼를 벗어 한 손에 들고 그래도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걸었다.

한 손에 든 슬리퍼 무게 때문에 양쪽으로 나누어 들었다.

문신을 한 무섭게 생긴 20대, 20대들이 옆을 스친다.

만약 내게 위해를 가하면 이 슬리퍼가 무기가 될 것이다.

 

아내가 하루를 여기서 숙박하고 가는 게 어떠냐는 말을 했다.

나는 그러자며 동의했다.

조금 후 아내는 그냥 집으로 가서 쉬는 게 젤이라며 됐다고 한다.

난타공연 등 여러가지가 열리지만 늦게 가서 앉을 자리가 없다.

까치발을 하고 있는 것도 한순간이지 우린 이리저리 사람구경하며 돌아다녔다.

나이트를 홍보하는 삐끼들이 명함과 선전지를 빠른 손으로 돌리고 있다.  

마트에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 크림을 하나씩 사 먹으면서 해수욕장 밤 마실의 대미를 장식했다.

0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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