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날이다.
아이들이 모두 객지에 나가 공부하고 있어 그 흔한 카네이션도 달지 못하고 출근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특히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일 땐 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어 괴발개발 갈겨 쓴 편지로 "아빠 감사합니다"를 써 가슴에 꽃을 달아준 기억이 있다.
아무런 느낌 없이 출근하여 담배를 물고 있을 때 문자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부지,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막내 서연이는 제가 가르칠게요."
군대를 갔다와 대학 4학년인 아들의 문자다.
하찮은 문자이지만 내게는 감동으로 밀려왔다.
졸업 후 곧 바로 임용고사를 봐 월급을 타서 동생 학비를 보탠다니 듣기만 해도 뿌듯하다.
두 딸은 전화도 문자도 없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그럴게다.
어린이 날의 연휴에 삼남매가 모두 집에 왔었다.
둘이 사는 적적한 공간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로 가득찼다.
꽃게랑 주꾸미를 사와 저녁에 함께 먹었다.
단둘이 사는 조용한 집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담배를 피려 학교 옆 산으로 갔다.
개간한 땅엔 할머니들이 줄지어 비닐 두덕속의 고구마 순을 끄집어 내며 북돋우기를 하고 있다 .
어버이 날임에도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들이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어린이 날은 어린이가 쉬어야 하고 어버인 날엔 어르신이 쉬어야 하는데 그들을 내 몬 것은 누구일까?
자식들을 키우려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자식에게 던져주고 검게 탄 얼굴과 구부러진 허리만 역사로 남아 있다.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젊은 일꾼을 구하지 못하지 대체 수단으로 할머니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품삯도 젊은 일군에 비해 싸고 또 손자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어주려면 현금이 필요하여 노동 현장으로 나온 것이다.
또 자식들의 생활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고 경제도 좋지 않으니 용돈을 넉넉하게 받을 처지도 아닐게다.
햇볕을 가리려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목덜미 그을리지 않도록 수건으로 덮었다.
멀거니 바라보다가 슬픈 생각이 나 되돌아왔다.
내 나이 스물 네살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서른 한살에 역시 암으로 돌아가셔서 나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고아다.
매일같이 밭이 나가 일을 하신 어머니, 늘 넝마처같은 옷을 걸치신 어머니, 언제 장가 가나 걱정을 하셨다.
잘 자란 우리 아이들을 어머니께 보여주고 싶다.
맛있는 회도, 꽃게도, 새조개도 사드리고 싶다.
쇠고기 한 첨, 회 한 접시 못 드시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어디에도 가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언젠가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며느리가 고기를 상추에 싸 시어머니께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를 생각했었다.
엊그제 본 드라마"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어버이 날 아침에 귀남이가 장모집에 들르고, 저녁은 할머니와 온가족이 있는 집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 졌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함께 외식도 하고 바닷가 여행도 하는 것인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전화라도 할까?
2012년5월 8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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