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거리/살아가는 이야기

농촌살기(요즘)

도연명 2012. 6. 26. 12:13

 나이가 늙어선지 다섯시 반 정도면 눈이떠진다.

밖으로 나가보면 벌써 마을 분들은 논둑이며 밭 고랑을 누비고 다니신다.

나는 무척이나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을 어르신들에게 비하면 게으른 사람이다.

오늘 아침엔 자라지 못하는 페츄니아에 조금식 비료를 주고 물을 뿌려줬다.

 

 일요일엔 마을 할머니가 감자를 캤다며 검정비닐 봉지에 한 봉지를, 마늘은 예쁘게 엮어서 가져오셨다.

마늘은 한접되는 것 같았다/

가물에 마늘이 작을텐데 당신은 쪼그만한 것을 드시고 우리에겐 커다란 것을 갖고 오셨다.

 " 농사 지은 것인데 조금 갖고 왔슈. 맛있게 드세유."

감사한단 말대신에

""아이구 뭐 이런 것을"

나는 무엇으로 보답해야할지 모르겠다.

밭을 맬때 잡초를 뽑아줘야 하나, 고추를 딸 때 고추를 따줘야 하나.

마을 어르신들이 가끔식 가져오시는것도 고맙지만 부담이 된다.

 

어제는 밤 열시가 넘어 운동삼아 마을 한 바퀴를 돌다가 반장을 만났다.

 봉지를 갖고 대문앞으로 나와달란다.

왜그러느냐니까

"면에서 휴지 일곱 롤하고 면장갑 40켤레가 나왔슈, 면장갑은 그냥 흰면장갑 스무 켤레하고 방수장갑 스무 켤레유."

나는 별것도 다 준다면서 흰면 장갑 스무켤레만 달라고 했다. 잡초제거나 괭이로 작업할 때 장갑을 끼고 할 생각이다.

초복이 7월 18일인데 그날 꼭 나오란다.

소머리 하나 푹 삶아 소머리국밥을 한그릇씩 대접한다고 한다.

말복날은 개 한마리를  끄스릴 작정이라고 한다.

나는 그날 막걸리와 소주나 한박스 씩 사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살 땐 앞 집아저씨와 윗집 아랫집 아저씨랑 술한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여기선 윗집 아랫집이 아닌 저만치 떨어져 있어도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귀 전원한 의미를 진정으로 느끼며 산다.

2012.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