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거리/살아가는 이야기

요즘(2012.6월)

도연명 2012. 6. 19. 10:59

요즈음(2012.6월)


 10년 내 가장 극심한 가뭄이란다.

빗방울을 본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마을을 돌아보니 여기저기서 웽웽 하는 모터소리가 들린다.

가뭄에 대비해 파놓은 관정과 냇가의 물을 모아 놓은 곳, 혹은 물이 없는 냇가 바닥을 파 물을 모아놓은 다음 물을 품어 논에 대기 위해서다.

그렇게 가물어도 관정과 양수 모터 펌프로 모내기는 완전히 했고, 이젠 마르지 않도록 물을 댄다.

 하지만 논은 그렇게 물을 대지만, 밭 작물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간신히 논에 물을 대지만 스프링 쿨러가 없어 그냥 타들어간다.

마늘을 캐는 할머니를 만나 마늘 캐는 일을 도와주었다.

스물 일곱 접을 심었는데 잘하면 일곱 접의 마늘을 캘까하는 풋념을 하신다.

원래 마늘은 한쪽 심으면 잘해야 여섯 쪽 마늘 (육쪽 마늘) 한 통을 수확한다. 그러나 가물어 한쪽이 상수리만한 통마늘을 얻을 뿐이다. 가뭄 탓에 마늘 쫑이 나오지 않고 수확량도 적어 큰일이란다. 양파 역시 주먹만한 게 아니라 잘되었을 때의 마늘만 하다. 작은 양파를 골라 즙을 내 서울 사는 아들에게 준다며 고른다. 나도 옆에서 적은 마늘을 골라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사는 할머니에겐 이렇게 말동무만 해줘도 고맙단다. 보라색 양파를 비닐 봉지에 주섬주섬 담아준다. 가지고 가서 고추장 찍어먹으란다. 힘들게 키운 양파를 조금 거들어줬다고 준단다. 나는 됐다며 한줌 양파를 가지고 나왔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혹독한 가뭄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관정도 개발되지 않았고 양수기도 없었다. 냇가 삽으로 파 조그만 웅덩이를 파고 페인트 통을 구해 양쪽에 끈을 매 퍼올려 퇴비장만큼 모내기를 하고 물이 고이면 또 퍼올려 모를 심었다. 그렇게 심고나면 쩍쩍 갈라진 틈사이로 봇풀이며 잡초가 벼보다도 더 잘 자란다. 그때 건답직파(乾畓直播)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마른 논에 호미로 벼알 서너 개 씩을 직접 심었다. 그러면 싹이 트고 자라며 늦게 장마라도 오면 자연스럽게 논의 벼처럼 자라게 마련이다. 봉천답(奉天畓)이라해서 하늘만 바라보는 논은 그냥 묵논이 되기도 했다. 때가 지난 묵논엔 조를 심었다. 하긴 우리는 당시 논이 없어서 소작을 얻어 조금 농사를 지었다. 보리를 수확해 방아를 쪄 보릿고개는 간신히 넘긴 시절이다. 가뭄과 비료가 없어 보리는 자라지 못해 난장이만큼 자란 보리를 완전히 익기 전에 베어 살짝 삶아 절구통에 찧는다. 어머니가 절구공이를 들 때 잽싸게 한 웅큼을 쥐고 호호 불어 꺼럭을 불어내면 누르스름 혹은 초록빛깔이 나는 보리알이 나온다. 그 맛이 얼마나 맛있던지.

 학교에서 오다가 보리이삭을 뚝뚝 잘라 지푸라기를 모아 불을 지핀다. 완전히 타기 전에 이삭을 꺼내 손으로 비벼 알곡을 먹는다. 집에 돌아올 땐 누구할 것 없이 입과 볼엔 특수부대 용사가 되어 위장을 한 모습이다.

 지금에야 자동차로 통학을 하고 보리밭도 없고, 아이들의 입맛이 구운 보리가 맛있을 리가 없다.

 가뭄을 바라보며 잠시 옛 추억에 빠져본다.

(201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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