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1월 20~25)을 마치자 마자 1월 26일 2박 3일 계획으로 남도 여행을 떠났다.
1년에 두 번 가는 예술인 모임에 부부 동반으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작년 1월엔 제주도 3박 4일, 여름엔 울릉도 독도 2박 3일, 이번엔 해남, 강진, 완도 진도를 다녀왔다.
첫날엔 강진으로 월출산 무위사를 향했다.
무위사는 통일신라시대 형미 스님이 주지로 8년간 있으면서 중창을 했다고 한다.
무위자연의 도가사상이 깃든 느낌이다.
멀리 월출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고조넉한 산사였다.
칼바람이 불고 땅은 질퍽거려 땅을 가려 밟았다.
다음으로 이동하는 중에 보성에서나 볼 수 있는 녹차밭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계단의 녹차밭은 이곳 강진도 녹차의 고장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풍력발전기처럼 돌아가는 프로펠러는 서리를 없애주는 방상팬(防霜 Fan)이라고 했다.
이어 청자박물관을 들렀다.
관요로 청자가 생산되면 배편으로 서울로 날라 궁중에서 쓰였단다.
청자를 싣고 가던 배가 난파를 당하여 신안 앞바다, 태안 신진도 앞 바다에서 발굴이 되는 것이다.
청자 박물관 주위는 재털이 쓰레기통에 이르기 까지 모두 청자로 만들어졌다.
요강도 청자로 만들었을까?
조기로 유명하느 법성포에는 돈이 하도 흔하여 개도 지전을 물고다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이곳은 정말 청자가 흔하기도 했다.
눈보라가 심하게 치고 날이 차 관광하기에는 부적합한 날씨지만 오랫동안 꿈꿔왔던 남도여행이기에 강행군하면서도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막 꽃망울을 터뜨릴려다가 강추위에 꽃잎이 언 동백꽃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따스한 봄날에 꽃을 피울 것이지 무슨 고고한 척하느라 이 추위에 힘들게 꽃을 피울까.
군 생활하던 여수 오동도와 돌산 무실목의 동백숲을 보고 여긴 동백이 아니라 봄에 꽃을 피워 춘백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진짜 동백은 완도나 진도 강진에가야 겨울에 꽃을 피은 왈 동백이라나.
그러나 날씨가 너무 추워 이곳도 춘백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며칠 전 베트남 여행할 때, 호치민의 애독서이자 베트남 공무원의 지침서였던 목민심서를 저술한 조선 최대의 실학자이자 대학배생활 중자였던 다산 정약용 흔적을 둘러보러 가는 길이다.
18년 동안의 강진 유배생활 중 11년간 저술활동과 후진양성을 하던 다산 초당을 올라가는 길은 다소 가파랐다.
다산 초당 거의 올라가 정석이라고 쓴 바위가 나타났다.
이는 유배마치고 돌아가기 직전 자신의 성인 丁자를 간단명료하게 새긴것이다.
이는 구구절절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성만을 새긴 것으로 다산의 성품을 알수 있는 첫번째 유적이었다.
이어 다산 초당이 나왔다.
茶山艸堂은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란다.
이곳에서 멀리 강진만을 굽어보며 저술활동을 하며 후진양성을 하며 도성인 한양을 그리워 했을까?
조그만 연못을 지나 동편으로 가자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정자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흑산도로 유배된 형 정약전을 생각하며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다.
이곳에서 백련사로 이어진 통로는 옆 백련사 주지인 벗이며 스응이고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만남의 통로였단다.
전 화백이 백련사로 걸어가자고 했지만 자동차가 다산초당밑에 있어 백련사로의 산책은 포기했다.
저녁 무렵에 진도로 들어갔다.
우리가 예약한 지평선 펜션은 진도의 남쪽 지산면에 있었다.
세방일 낙조가 유명하닥 해서 차를 몰아 열심히 달렸다.
마침 구름이 끼어 있어 아름다운 낙조를 구여하지 못하고 찬바람만 맞고 돌아왔다.
펜션에 짐을 꾸리고 나서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인근 횟집을 찾아보니 예약을 해야만 준비를 해놓는다며 준비된것이 하나도 없단다.
면사무소로 전화를 해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을 알려 달라고 했다.
면사무소 여직원은 어느 식당을 선전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양 머뭇거다가 남자 직원이 알려주는 식당을 추천해 알려줬다.
금요일 오후인지라 모두 시내로 나가 면소재지의 알려준 식당은 문을 닫았다.
인근 찾다가 한 식당을 찾아 주인 아주머니의 입담을 안주삼아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가 묵은 지평선 펜션은 파도가 칠 대면 다리를 쭉 뻗으면 바닷물에 닿을 듯 했다.
탈렌트 정혜선씨가 묵었다며 자랑하는 주인은 부산이 고향이라며 매우 친절하게 응대했다.
가져운 술과 간단한 안주로 여행 첫날의 여독을 술로 풀었다.
이튿날 펜션을 나와 운림산방으로 향했다.
나는 운림산방이 커피솝일가 아니면 간단한 미술관일 거라고 생각했다.
감이 간 전 화백은 화가여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문화해설가 이상으로 허백련, 남농, 선생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허백련이 추사 김정희로부터 배웠고.....
역시 눈보라가 치는 가운데 운림산방의 이모저모를 구경하였다.
울림산방의 둘레로는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정자를 중심으로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는 오래된 백일홍 나무 서있었다.
겨울대로 운치가 있지만, 봄이나 여름, 가을의 풍광이 더 멋있을 것 같다.
그림을 둘러보니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추사의 세한도와 비슷한 화풍이 보여 추사의 영향을 받았다는 확신이 왔다.
이어 진도의 명물 진도개 보존소를 들러 많은 진도개를 보았다.
진도개를 사지 않을 거면서 매매를 하느냐? 가격은 얼마나 하느냐고 묻자, 가격은 80만원 이상이며 보존소에서는 팔지 않는다고 했다.
보존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개 사료를 주고 개똥을 치며 아주 어려운 근무환경이었다.
진도명품관을 들러 김이며, 진도 홍주 등을 샀다.
근무하는 직원이 얼마나 친절한지 울금으로 만든 엿을 여행중에 맛보라며 준다.
흑미로 만든 차를 직접 타서 일일히 줬다.
이곳 김도 완도김처럼 유명하다고 해서 우리 먹을 것과 동네 몇몇 사람에 주려 샀다.
베트남 여행에서 아껴 안 쓴 돈 5만원을 선뜻 사라고 아내에게 주었다.
귀여운 진돗개가 울타리안에서
외로운지 방문객을 반갑게 맞고 있다.
군대의 내무반 처럼 진돗개들이..... 진돗개들의 강제수용소다
뛰처나가고 싶은지 연신 밖으로 고개를 들어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
달마산 미황사로 향했다. 서릿발 같은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쳐져 있는 산 중턱에 미황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미황사는 불교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절인데 실제로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달마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압도될만 큼 아름다운 산이면 봄 여름 가을 철철이 멋있을 게다.
미황사의 전설을 한 보살님으로부터 들었다.
황소가 불경을 싣고 오사서 우는데 소리가 아름다워 아름다울 미에 드러웁울 황자를써서 미황사라고 했다고 간단하게 얘기해줬다.
달마산이라서 인지 미황사 자하문을 지나 대웅전쪽으로 올라가는데 흰 달마상이 눈을 치켜세우고 있다.
자하문은 건축한지 얼마되지 않는 듯한 건물이었는데 영주 부석사와 비슷한 배치를 한 것처럼 보였으나 인공미가 너무 보여 싫었다.
템플 스테이로 유명하지만 겨울이라 사람이 없다고 했다.
미황사 법종
자하문 뒤로 달마산이 보인다
달마상
한국특유의 아름다운 문양의 공포
달마산
이어 해남으로 차를 달렸다. 노화도를 거쳐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전에는 보길도로 가는 여객선이 있었는데 지금은 노화도와 보길도가 연결되어 노화도로 들어가 차로 보길도를 가기로 하고 자동차를 여객선에 실었다.
선착장 앞의 아름다운 절경
노화도 가는 배는 30분 간격으로 오후 5:30분 막 배다.
땅끝 토말비가 아닌 또다른 토말비가 서 있다
보옥동 공룡알 해변이다. 공룡알처럼 크고 작은 몽돌이 가득하다.
배에서 본 아름다운 구름
노화도 가는 카페리호
예송리 해수욕장에 자연산 미역을 말리고 있다. 앞바다는 전복 양식장이었는데 지난번 태풍으로 산산조각나 어장이 황폐화되고 새로 또 만들었다고 한다. 전복 양식어장이 떠 밀려와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태우다가 오래된 노송이 타버린 채 있다.
예성리 포구를 배경으로
전 화백은 예성리 아름다운 포구를 스케치하기에 바쁘다
멀리 제주도와 추자도가 보인다. 사진에는나오지않지만
곡수당 부근
낙낙서재
동천석굴
계곡을 이용한 자연스런 정원으로 소새원 등 정원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은 처음이다.
세연정이다.
윤선도가 이곳 부용동에서 어부사시가를 짓고 지방 수령들과 세연정에 모여 시를 짓고 무희들의 춤을 보면서 신선생활을 했다고 한다. 동대, 서대 등 돌로 만들어진 무대를 만들어 이편 무희들 춤을 추거라, 저편 무희들은 춤을 추고 세연정에 있는 기생은 노래를 무르고 술을 따르고.....
이곳에 살았던 하층민들을 얼마나 괴롭혔을까?
춘향전에 나오는" 금준미주 천인혈이요, 옥반가효 만성고라, 촉누락시 민누락이요 고상가처 원성고라 " 시를 이곳에서 읊어을 것 같다.
지국총 지국총 어샤와.... 어부사시가가 녹음되어 귀를 간지럽힌다.
세연정에서 잠깐 옛날로 돌아가 보았다.
양반의 세도가 얼마나 높았을까?
하층민들을 내쫒아 곡수당과 낙서재를 짓고 앞산에 보이는 절벽에 동천석굴을 만들게 하고 하인들은 술과 안주를 지게로 져 나르고....
보길도 식수원인 저수지 쪽으로 올라갔다.
멀리 시멘트 포장길이 보여 동천석굴로 올라가는 길이 아닐까 해서다.
항아리 입구처럼 보이는 곳에 세연정이 있고 그 안은 항아리 밑부분 처럼 넓었다.
조그만 유토피아였다.
군주가 없고 백성이 세금도 내지 않고 아무 걱정도 없이 사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곳은 양반과 학정만 있는 곳이었다.
세연정옆으로 보길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하필이면 세연정옆에 학교를 지었을까
학교를 지으면서 세연정의 유적을 훼손하였음에 틀립없다.
아무리 교육입국이라지만 이런 유적지를 훼손하면서까지 학교를 지어야만 했을까?
조금 이동하면 얼마든지 학교 지을 부지가 있을텐데.
두륜산 대흥사로 이동하였다.
대흥사는 여름에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자는 이야기에 눈보라치고 추워 그냥 올라가자고 했다.
일주문을 지나 걸어서 한참을 올라가야만 되는길을 차를 몰아 단숨에 대흥사에 다다랐다.
웅장한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니 정말 커다란 사찰이었다.
달마산 미황사가 대륜사 말사라더니 이렇게 큰 사찰일줄이야.
멀리 보이는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이 누워 있는데 머리 모양, 합장한 손, 다리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설명하니 그렇게보인다.
일종의 최면이다.
멀리 부처가 누워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고색창연한 대웅전의 모습
티벳의 라마교 사찰에서 볼수 있는 세번을 돌리면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해 불전함에 헌금을 하고 돌렸다. 라마교에서는 몸마니 파메홈.... 돌리기만 하면 불경을 외우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마지막 코스로 윤선도 유적지 녹우당을 찾았다.
녹우당은 (綠雨堂)은 집 뒤 비자나무 숲이 있는데 바람이 불면 비자나무 잎이 바람소리에 흔들려 비가오는듯한 소리를 낸다고 하여 이름을 붙였단다.
이름도 정말 근사하다.
윤선도는 효종의 스승으로 수원에 집을 지어 줬는데 그집을 뜯어 이곳으로 옮겨 지은 것으로 윤선도의 생가지는 아닌데 윤선도의 생가지로 잘못 알려져 있다.
윤선도의 증손인 선비화가 공재 윤두서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고택의 풍모를 널리 알리기 위해 수리를 하지 않은 것읹지 군데군데 헐고 기와가 내려 앉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문학답사를하는 등 사람들이 찾는 곳인데 전혀 수리하지 않고 방치한 것은 해남군이나 해남 윤씨 문중의 책임이리라
고산 유물관과 녹우당은 수리를 이유로 개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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